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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 한 컷

첫눈이 내립니다. 안도현 <겨울 숲에서>

by 고모란 2024. 11. 27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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첫눈이 오지게 온다.

이런 첫눈은 오랜만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.

안도현 시인의 시집 <그대에게 가고 싶다>에 수록되어 있는 '겨울 숲에서'를 찾아 읽어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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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그래, 이왕 올 거라면

무뎌지고, 메말랐던 내 마음 푹 젖게

폭설로 내려라.

다만 종이장 같은 내 여린 마음 너에게 잠겨

힘없이 찢겨지진 않았음해. 그러니

 

오래 도록 내리진 말아라"

 

첫눈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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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 숲에서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안도현

 

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

첫눈이 내립니다.

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

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

그대를 기다립니다.

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.

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

헐벗은 나무들도 모두

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

눈이 쌓일수록

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

그대를 사랑하는 동안

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

보잘것 없는 지식들을

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

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.

비록 가난하지만 

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

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

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

긴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

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.

그때까지 내 할 일은 

머리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

눈사람 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.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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